늦잠으로 아침 조조영화를 실패하고, 아쉬운 마음에 왓챠를 켰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인데, 우연치고 너무 취저였다! 와앙

장르는 스릴러+추리+코믹, 제작은 광화문 시네마에서 맡았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불법시술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억척엄마 양미경.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 한통. "엄마, 나 120만원만 보내줄 수 있어? 수도세가 120 만원이 나왔대. 아, 그냥 별말 하지 말고 쫌!" 우리 '이판사'가 물을 쓰면 얼마나 쓴다고, 120만원? 부랴부랴 상경한 미경. 어마어마한 수도세의 진실을 파헤쳐 들어가는데, 아니 이건....살인사건이잖아?


광화문 시네마는 영화 감독 몇몇이 모인 작은 영화사인데, 주로 저예산 독립 영화를 만든다. <1999, 면회>와 <족구왕>에 이은 3번째 작품이 바로 이 <범죄의 여왕>이라고. <족구왕>은 반쯤 보다 말았고 <1999, 면회>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 이거이거 역주행의 삘이 온다. 이제 곧 나올 네번째 작품인 <소공녀>는 이솜X안재홍X조수향의 조합이라고 하니, 개봉하면 영화관으로 달려가야지. 


광화문 시네마의 영화를 살짝 훑어보면,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한 단면ㅡ복학생 그리고 고시원과 같은ㅡ에 숨어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유쾌하게, 그리고 적정한 무게로 담아내는 것 같다. 흔해빠진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캐릭터를 한단계 비틀어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찾아내는 그런 작업을 해내는게 참 부럽기도 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렇게 만든 영화라서 더 재미있다. 


아래는 감독님의 인터뷰. 영화를 보고 궁금했던 것, 느꼈던 것들이 잘 담겨있어 몇 자 담아본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인터뷰 출처: http://www.movist.com/star3d/read.asp?type=32&id=24367)






고시생과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을 영화 주인공으로 삼았다. 
사실 처음에는 고시생이 필수 소재는 아니었다. 자리를 잡기 위해 어떤 시험을 봐야만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취준생정도로 생각했다. 그들이 준비하는 시험이 되게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고른 건, 그들의 상황에서 어떤 아이러니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1차적으로는 먹고 살기 위해서 법조인이 되려는 거겠지만, 명목상으론 분명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갖고자 하는 직업 아닌가. 그런데 그들이 시험을 앞두고 바로 옆에서 살인사건이 나면, 시험 보는 걸 포기하고라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개입할 수 있는지 궁금하더라. 내 생각엔 그동안 시험에 공 들인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절대 그렇게 못할 것 같았다. 

당연한 마음 아닐까. 
당연하겠지. 근데 그게 바로 직업적 아이러니 아닐까? 불의를 보고 행동하지 않은 뒤에 그 사람이 판사가 되면, 어떤 인간일지에 따라서 좀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 그 기억이 양심의 가책으로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포인트를 살려서 이야기를 구성했다. 또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신선한 느낌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90년대 드라마 보면 사법고시 준비생은 항상 추리닝만 입고 나와 늙수그레한 느낌을 주다가, 시험 붙으면 뒷바라지 해주던 여자친구를 차버리기나 하고, 그런 이미지가 강했으니까(웃음) 



직업적 아이러니라, 취준을 준비하는 나도 빠져있는 아이러니 중 하나다. 원하는 자리에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단계, 예를 들면 자소서/인적성시험/면접과 같은 것들을 준비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어떤 역량도 키워주지 못하는 데, 계속 거기에만 심정적/시간적으로 매여있게 되는 그런 아이러니.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가도 아냐, 그건 나중에 하고 미뤄버리게 되는 그런 아이러니. 어쨌거나 통과의례를 통과하지 못하면 거시적으로서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미시적 실천이 거시적 실천과 좀 더 가깝게 연결되어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제일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다. 음, 근데 난 둘 다 열심히 안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이 모순적인 것을 잡아낸 감독님 리스펙트.  


고시생에게 그러한 직업적 아이러니를 부여함과 동시에, 아주머니의 오지랖을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ㅡ물론 양미경의 표면적인 목표는 아들의 수도세 폭탄의 원인을 찾아내어 돈을 덜 내고자 함으로 보이지만, 이는 단초였을 뿐 개태/덕구/진숙에게 다가가는 양미경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인간을 향해있다ㅡ으로 탈바꿈한다. "나 양미경인데, 넌 이름이 뭐니?" 꼰대 아줌마가 신경질적으로 묻는 예삿말이 아니라, 정말 넌 누구냐고, 넌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인간대 인간의 질문. 양미경이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인 가장 중요한 이유다. 






등장하는 사람들이 죄다 20대 아니면 30대다. 청춘들이 너무 무기력하게 그려졌다. 
그럴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이야기 안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했던 건데 어쩌다 그렇게 됐다.(흐흐) 사실 나랑 비슷한 군상들이기도 하다. 시험이란 경계 안에 묶여있는 존재들은 눈치를 많이 본다. 내 주변 친구들만 봐도 그렇고. 무언가를 즐긴다고 할 만한 것도 상당히 소소하다. 하루 종일 독서실에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사고, 노트북으로 영화 한 편 보는 게 낙인 친구들도 많다. 심지어 영화는 생각도 하기 싫다고 그냥 티비 프로그램 아무거나 틀어 놓는 친구도 있다. 내 경우는 홈쇼핑을 틀어 놓는다.(웃음) 왜냐면 홈쇼핑은 감정이 일관되니까. 모든 게 다 적극적이고, 웃고 있고, 긍정적인 분위기다. 등을 돌리고 있어도 웃음소리가 계속 나고. 영화 채널을 틀어놓고 자면 중간에 공포영화 같은 게 나와서 자다가 막 악몽을 꾸더라.(웃음) 


‘개태’(조복래) 나 ‘덕구’(백수장)도 그렇고 상당히 특이한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는데, 영화 속에서 밸런스가 잘 맞아 떨어졌다. 
그건 그냥 다행히도.(으하하) 처음 <범죄의 여왕>을 만들 때 어쨌든 스릴러라는 장르를 선택했으니 기본적으로 수사원과 조사원, 이렇게 두 캐릭터를 설정했다. 그럼 나머지는 셋트로 맞춰진다. 예를 들면 미경은 셜록, 개태는 왓슨, 진숙은 목격자, 덕구는 정보원! 특히 덕구 캐릭터는 <브릭>이라는 영화에서 참고했다. 거기에 보면 정보원 역할을 하는 배우가 항상 도서관 한 구석에서 큐브를 맞추고 있다. 누가 와서 뭘 물어보면 “어디어디에 가서 누굴 만나봐” 라고 말한다.(웃음) 진숙은 시퀀스 안에서 볼 때 목격자이기도 하지만 살인의 대상이 됐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언덕녀를 상상해가며 만들었다. 

‘덕구’는 사실 정보원이라기엔 좀 바보 같더라.(웃음) 
덕구 캐릭터가 좀 모자라다.(웃음)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이건 진숙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그 인물들이 하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좀 흐트러트릴 필요가 있었다. 오로지 미경의 판단에 맡기기 위해서다. 덕구나 진숙이 하는 얘기는 가만 들어보면 그렇게 신뢰가 가는 얘기도 아니고 반대로 그렇게 틀린 얘기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믿으면 믿는 거고, 안 믿어도 그만인 얘기들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결국 미경이 그 말을 믿었다는 거고, 모두 사실이었다. 결론적으로 아무도 미경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럼 덕구와 진숙은 어땠을까. 모자라보이는 자신들의 얘기를 믿어줬을 땐 미경에게 더 잘해주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 그림을 생각했다. 




청춘의 무기력함,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것. 광화문시네마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강점이 아닌가 싶다. 그 무기력해보이던 청춘이 모여 결국 무언가 하나를 이루어내는 카타르시스. 결말이 조-금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지만 즐거웠던 것은 바로 그 무기력함이 모여 큰 거사를 치러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기력한게 정말 무기력하기만 하다가 끝나면 진짜 무기력하잖아.  


한편 영화를 보고 나면 개태의 매력에 헤어나올 수 없는데, 개태의 매력은.. 소같은 눈...ㅇ_ㅇ? 무심한듯 시크하게 미경의 친절한 왓슨씨가 되어준 그. 왜, 항상 조폭 시다바리 중에는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애들 한 명씩은 꼭 있지 않나. 알고보면 따뜻한 개태는 영화의 최고 조연이 아닌가 싶다. 







광화문 시네마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일종의 창작 연대인가. 
대외적으론 그런 것 같다.(웃음) 근데 내부적으론 조기축구회 같은 분위기다. 때 되면 만나서 놀고 헤어지고 하는. 총 7명인데 3명만 만나서 놀고, 어떤 때는 두 명만 만나고. 이런 걸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집단인 것 같은데.(웃음) 

당신은 좀 나중에 들어가게 된 걸로 안다. <족구왕> 연출을 도운 게 계기였나. 
그런 개념이라기 보단, 다 같이 노는 데 껴 있다가 그렇게 된 거다.(웃음) 물론 전고은 감독이 다리를 이어 주긴 했다. 내가 좋아하는 오빠들이야! 이러면서.(웃음) 원래 광화문 시네마 사람들이 다 나랑 동기이긴 한데, 안 친했다. 그러다가 와이프랑 같이 살게 되니까 집이랑 사무실도 바로 옆이 되고. 일주일에 세 네 번씩 모여서 술 마시고 놀게 된 거다. 사실 광화문 시네마에서는 우리 둘이 부부라고 별로 안 좋아 한다.(웃음) 감독 개인으로 볼 때가 서로 제일 편하고 좋으니까. 

은근슬쩍 멤버가 됐다고 봐야겠다. 
그렇다. 그렇게 거국적이지 않다. 그냥 잘 노는 형들 있다 그래서 따라가보니 거기가 영화 팀이고 그런 거다.(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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