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이렇게 달려가는게 정말 맞는 걸까?


이런 고민조차 사치인 우리들에게 잠시 숨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볼 기회를 주는 영화, 싱글라이더.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 삶엔 준비보단 시작이 필요한 게 아닐까?


모두들 쳇바퀴처럼 도는 인생을 살아간다.

내 꿈을 위해, 내 사람들을 위해, 내 미래를 위해.

더 잘 살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왜 그렇게나 많은건지 24시간은 턱없이 모자라기만 하다.


종종 수단과 목적은 전도되어버리고

핑크빛 미래를 상상하며 흑백 현실을 살아가는 스스로를 자위한다.



좀 있다가, 나중에, 이것만 끝내면, 언젠간...



바쁜 일상에 치여 누군가에게 사랑한다 한 마디 전할 여유조차 없고,

진짜 하고싶은 것은 어느순간 희미해져 누군가를 제치고 이기는 것에만 목매여버리고,

남의 마음을 챙기는데 온 신경을 쏟아 결국 내 마음은 황폐해지는, 그런 일들.


그래서 결국엔 어떻게 살고싶은건데?라고 누군가 물으면 잠시 멍해지며 할 말을 잊어버리곤 한다.

사실은 모두다 무의식중에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리 멀리 있지 않고, 그리 어렵지 않으며,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사실은 그 핑크빛 미래라는 것이 어쩌면 단지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준비'하는 데만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준비'해야한다는 수많은 목소리에 그저 몸을 맡겨버리고 나는 잘하고 있다며 안주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 수많은 '준비'의 시간을 조금 덜어내어 지금 바로 '시작'하는데 쓴다면,

작고 미약한, 보잘것 없어보이는 '시작'이라 할지라도 그로 인해 우리 삶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이주영 감독님이 가장 좋아하신다는 장면.

홍콩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애하고 와이프 여기에다 보내놓고, 2년 동안 한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어요.


잘나가는 증권회사의 점장이었지만, 부실채권으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재훈. 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러기 아빠들의 표상이다. 불 꺼진 식탁아래 앉아 포장해온 초밥을 우겨넣고, 아내에게 말 못한 채 묵묵히 손등에 주소를 적어내는 그의 모습은 가장으로서의 무게와 회한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는 단지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고 싶었을텐데.


자신이 등떠밀어 보낸 아내와 아이였음에도, 그들의 행복해보이는 한 때에 쉬이 발을 들이지 못하는 재훈. 그는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을까, 더이상 이 생활을 지원해줄 수 없어 슬퍼했을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이질감에 혼란스러웠을까. 행복해 보이는 아내 옆의 또 다른 남자를 보면서도 그가 쉽게 화를 낼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빈자리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채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말한다. 정말 중요한 것을 이제야 알았다는 후회와 회한이 짙게 묻어나왔다. 







연락이 되지 않는 남편때문에 복잡다단한 심경이지만,

이민을 위해 꿋꿋하게 국립악단 시험을 보러가는 수진.



제가 제 인생의 주체가 되는 것을 피해왔어요.


수진은 재훈과 결혼한 뒤 음악을 포기하고 육아와 내조에 매진해왔다.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재훈에게 등떠밀려 아들과 단 둘이 호주에 왔다. 한국과는 다른 생활을 하면서 수진은 잊고 살았던 자기 자신의 꿈을 다시금 찾게 되고, 남편 몰래 이민을 준비한다. 물론 자신이 국적을 따 준비해놓으면 남편도 같이 올 수 있을 것이라 소망하며.


수진이 호주에서 계속 살고싶다고, 같이 와서 살자고 얘기했다면 재훈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수진이 재훈에게 미리 얘기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지만 그녀가 용기내어 입을 뗐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나였어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거다. 확신을 얻고 확신을 주기 위한 무엇으로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외적인 준비에 의존하곤 하니까. 수진도 늘 되새겼을 것이다. "합격하면, 합격만 하면..." 하고 말이다.


남편의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공항으로 가는 길, 수진은 화장실에서 이내 꺼이꺼이 울어버리고 만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돈을 벌러 온 진아.

세상은 순진한 사람에게 참 가혹하다.




새벽 5시에 버스를 타보면요,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말 그거 진짜 개소리거든요.


호주에서 열심히 돈을 벌었지만, 환전 사기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은 진아. (연기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론 가장 감정이입됬던 캐릭터. 그녀가 품었을 꿈, 그녀가 흘렸을 땀방울, 그녀가 버텨낸 시간들이 참 아쉽고도 아쉬워서. 생생하고 파릇파릇한 청춘의 이미지로 우리네 삶의 허무함과 헛헛함을 배로 키워주는 캐릭터다. 하고싶은 것도 갖고싶은 것도 많은 그런 나이, 진아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었을까.






어느 산뜻한 날의 시원한 바람처럼 그렇게


우리가 아무도 모르게 여기 혼자 왔던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지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결국 모든 것을 알게 된 재훈과 지나. 오히려 그들이 훨씬 더 편안해보였던 것은 왜일까. 

핑크빛 미래로 가는 방법인줄 알았지만 실은 그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삶의 굴레를 이제서야 내려놓을 수 있어서일까. 

그렇게 조용히, 그들은 가벼운 마음을 안은채 길의 끝으로 나아간다. 


누군가는 지루했다고 하지만 나에겐 감정 하나하나를 곱씹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마음 속 한 켠에 생각의 라이트를 켜주는 그런 영화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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