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aniel Blake

(나, 다니엘 블레이크)






설 연휴, 별러왔던 시간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낼까 고민하다 선택한 영화.


보고싶어서 상영관을 찾아다닌지 오래였지만 상영관이 몇 없기도 하고 시간대가 맞지 않아 늘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네이버에 다운로드가 떠버림.

사실 이게 좀 더 편하긴 하다. 소장도 할 수 있고.



좋은 영화라서 보는데 뜸을 많이 들였나보다-




마우스를 올리라고..? ㅇ..이렇게?




댄은 목수다. 아니 목수였다.

아픈 아내의 병간호를 해왔고 아내가 죽은 뒤엔 심장병을 얻었다.

의사는 댄에게 위험하니 일을 하지 말라고 했다. 


영화는 댄이 질병 수당을 받기 위한 심사로 시작하는데, 댄과 (자칭 의료 전문가라는) 한 여자와의 대화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댄은 심장이 아픈건데,

"팔을 머리 위로 올리실 수 있나요?"

"50m 이상 혼자 똑바로 걸을 수 있나요?"

따위의 질문을 날리니, 안그래도 츤데레인 댄이 안 까칠해질래야 질 수가 없지.


결국 댄은 질병 수당을 받는데 실패한다.  

댄은 그렇게 수당 찾아 삼만리 길을 떠나게 되는데, 

본질을 잃은 채 형식과 절차만을 강조하는 관료사회의 단면이 여실히 드러난다.

인간을 단지 화면 속 하나의 번호로, 하나의 점으로 전락시키는 그런 사회.


항소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심사를 두 번 받아야 한다.

두번째 심사는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댄은 컴퓨터를 쓸 줄 모른다!..두둥.

심사를 두 번 받아도 항소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것일 뿐 승소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다른 수당은 없을까.

기본적으로 질병 수당은 몸이 아파 일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나오는 수당이고, 구직자들에게 나오는 구직 수당이란게 있다.

결국 댄은 임시 방편으로 구직 수당을 신청한다.

댄은 분명히 아픈데 국가는 댄이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근데 이 구직 수당도 참 골때리는거지.

구직 내용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게 참 까다롭다.

"남보다 튀어야 한다"는 구닥다리 허무한 내용이나 강조하는 이력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거나,

이력서를 낸 곳을 어떻게든 증명해야 한다거나. (심사원은 모바일 사진을 찍으라고 하는데, 댄은 2G폰이다....)


의사는 줄곧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몸은 아픈데 질병 수당은 안된대, 그럼 구직 수당을 받으래, 근데 난 몸이 아파서 일을 할 수 없으니까 구직하는 척 밖엔 할 수가 없는데, 근데 또 이걸 증명하지 못하면 구직 수당이 안나오고 징계를 받는대... 어쩌라고.. 댄은 요상한 뫼비우스의 띠에 빠진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제도 사이에 생겨나는 사각지대.

거기에 댄이 있었다.







댄과 마찬가지로 사각지대에 놓인 케이티.


데이지와 딜런이라는 귀여운 아이들을 데리고 런던에서 이사왔다.

그녀 역시 어려운 생활고로 인해 (아마도) 구직 수당을 신청했다.

하지만 버스를 잘못 타 상담 시간에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수당 제제 대상이 되버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댄은 불합리한 그들의 일처리에 함께 분노해준다.

둘은 그렇게 친구가 된다.


츤데레 댄의 매력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다는 것이다.


댄은 여러모로 케이티와 아이들을 도와준다.

케이티가 배고픔을 참고 참다가 몰래 통조림을 까먹고는 자괴감을 느낄 때 손수건을 건네고,

마음에 상처를 얻은 딜런에게 장난스레 농담을 걸고,

나무로 만든 물고기 모빌을 걸어주며 데이지에게 밝은 바다를 선물한다.








케이티에겐 꿈이 있었다.

일을 해야하지만, 사이버 대학으로 공부를 더 하고싶다고 했다.

그리고 댄은 오랜만에 톱을 잡았다.


하지만 미칠듯한 생활고에 윤락 업소에 발을 들이게 된 케이티.

그것을 알게된 댄.


댄은 꾸짖거나 화내지 않았다.

쉽게 동정하거나 모든걸 다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에게 말했다. 널 위해 책장을 만들었다고.


그것이 댄의 방법이었다.








내가 굶어 죽기 전에 항소 날짜를 잡아줘라!



꽉막힌 공무원들 중에서도 댄에게 호의적인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댄을 도와주는 편이었고, 댄이 구직 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조언해줬다.

이거라도 받지 않으면 모든 걸 잃게 될거라고.


하지만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더 잃을 것이 무에 있을까.


결국 댄은 주머니에서 블랙 락카를 꺼내든다.

사람들은 호응한다.

지나가던 노숙자는 말한다.


"다니엘 블레이크 경께 경례!"








결국 건물 훼손 죄로 경찰서에 끌려간 댄은 훈방 조치를 받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댄을 찾아 온 손님, 케이티의 딸 데이지.


자신의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일까,

댄은 데이지를 돌려보내려 한다.

데이지는 마지막으로 묻는다.


-우릴 도와주셨던 거 맞죠?

-그래.

-저도 돕고 싶어요. 



어쩌면 이들에게 진짜 필요했던 것은 통장에 찍혀나오는 한줄의 수당이 아니었을 것이다.


댄은 케이티의 도움을 받아 질병 수당 심사에 대한 항소 재판에 나간다.

하지만 재판 직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오전 9시에 하는 장례식은 가난뱅이 장례식이래요. 값이 가장 싸서.



댄은 항소심에서 무슨 말을 하려했을까.

케이티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의 마지막 말은 너무나 군더더기 없이 명확했다.


나에겐 인간으로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난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I, daniel blake i'm a citizen nothing more and nothing less.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