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으로 아침 조조영화를 실패하고, 아쉬운 마음에 왓챠를 켰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인데, 우연치고 너무 취저였다! 와앙

장르는 스릴러+추리+코믹, 제작은 광화문 시네마에서 맡았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불법시술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억척엄마 양미경.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 한통. "엄마, 나 120만원만 보내줄 수 있어? 수도세가 120 만원이 나왔대. 아, 그냥 별말 하지 말고 쫌!" 우리 '이판사'가 물을 쓰면 얼마나 쓴다고, 120만원? 부랴부랴 상경한 미경. 어마어마한 수도세의 진실을 파헤쳐 들어가는데, 아니 이건....살인사건이잖아?


광화문 시네마는 영화 감독 몇몇이 모인 작은 영화사인데, 주로 저예산 독립 영화를 만든다. <1999, 면회>와 <족구왕>에 이은 3번째 작품이 바로 이 <범죄의 여왕>이라고. <족구왕>은 반쯤 보다 말았고 <1999, 면회>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 이거이거 역주행의 삘이 온다. 이제 곧 나올 네번째 작품인 <소공녀>는 이솜X안재홍X조수향의 조합이라고 하니, 개봉하면 영화관으로 달려가야지. 


광화문 시네마의 영화를 살짝 훑어보면,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한 단면ㅡ복학생 그리고 고시원과 같은ㅡ에 숨어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유쾌하게, 그리고 적정한 무게로 담아내는 것 같다. 흔해빠진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캐릭터를 한단계 비틀어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찾아내는 그런 작업을 해내는게 참 부럽기도 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렇게 만든 영화라서 더 재미있다. 


아래는 감독님의 인터뷰. 영화를 보고 궁금했던 것, 느꼈던 것들이 잘 담겨있어 몇 자 담아본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인터뷰 출처: http://www.movist.com/star3d/read.asp?type=32&id=24367)






고시생과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을 영화 주인공으로 삼았다. 
사실 처음에는 고시생이 필수 소재는 아니었다. 자리를 잡기 위해 어떤 시험을 봐야만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취준생정도로 생각했다. 그들이 준비하는 시험이 되게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고른 건, 그들의 상황에서 어떤 아이러니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1차적으로는 먹고 살기 위해서 법조인이 되려는 거겠지만, 명목상으론 분명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갖고자 하는 직업 아닌가. 그런데 그들이 시험을 앞두고 바로 옆에서 살인사건이 나면, 시험 보는 걸 포기하고라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개입할 수 있는지 궁금하더라. 내 생각엔 그동안 시험에 공 들인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절대 그렇게 못할 것 같았다. 

당연한 마음 아닐까. 
당연하겠지. 근데 그게 바로 직업적 아이러니 아닐까? 불의를 보고 행동하지 않은 뒤에 그 사람이 판사가 되면, 어떤 인간일지에 따라서 좀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 그 기억이 양심의 가책으로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포인트를 살려서 이야기를 구성했다. 또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신선한 느낌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90년대 드라마 보면 사법고시 준비생은 항상 추리닝만 입고 나와 늙수그레한 느낌을 주다가, 시험 붙으면 뒷바라지 해주던 여자친구를 차버리기나 하고, 그런 이미지가 강했으니까(웃음) 



직업적 아이러니라, 취준을 준비하는 나도 빠져있는 아이러니 중 하나다. 원하는 자리에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단계, 예를 들면 자소서/인적성시험/면접과 같은 것들을 준비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어떤 역량도 키워주지 못하는 데, 계속 거기에만 심정적/시간적으로 매여있게 되는 그런 아이러니.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가도 아냐, 그건 나중에 하고 미뤄버리게 되는 그런 아이러니. 어쨌거나 통과의례를 통과하지 못하면 거시적으로서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미시적 실천이 거시적 실천과 좀 더 가깝게 연결되어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제일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다. 음, 근데 난 둘 다 열심히 안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이 모순적인 것을 잡아낸 감독님 리스펙트.  


고시생에게 그러한 직업적 아이러니를 부여함과 동시에, 아주머니의 오지랖을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ㅡ물론 양미경의 표면적인 목표는 아들의 수도세 폭탄의 원인을 찾아내어 돈을 덜 내고자 함으로 보이지만, 이는 단초였을 뿐 개태/덕구/진숙에게 다가가는 양미경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인간을 향해있다ㅡ으로 탈바꿈한다. "나 양미경인데, 넌 이름이 뭐니?" 꼰대 아줌마가 신경질적으로 묻는 예삿말이 아니라, 정말 넌 누구냐고, 넌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인간대 인간의 질문. 양미경이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인 가장 중요한 이유다. 






등장하는 사람들이 죄다 20대 아니면 30대다. 청춘들이 너무 무기력하게 그려졌다. 
그럴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이야기 안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했던 건데 어쩌다 그렇게 됐다.(흐흐) 사실 나랑 비슷한 군상들이기도 하다. 시험이란 경계 안에 묶여있는 존재들은 눈치를 많이 본다. 내 주변 친구들만 봐도 그렇고. 무언가를 즐긴다고 할 만한 것도 상당히 소소하다. 하루 종일 독서실에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사고, 노트북으로 영화 한 편 보는 게 낙인 친구들도 많다. 심지어 영화는 생각도 하기 싫다고 그냥 티비 프로그램 아무거나 틀어 놓는 친구도 있다. 내 경우는 홈쇼핑을 틀어 놓는다.(웃음) 왜냐면 홈쇼핑은 감정이 일관되니까. 모든 게 다 적극적이고, 웃고 있고, 긍정적인 분위기다. 등을 돌리고 있어도 웃음소리가 계속 나고. 영화 채널을 틀어놓고 자면 중간에 공포영화 같은 게 나와서 자다가 막 악몽을 꾸더라.(웃음) 


‘개태’(조복래) 나 ‘덕구’(백수장)도 그렇고 상당히 특이한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는데, 영화 속에서 밸런스가 잘 맞아 떨어졌다. 
그건 그냥 다행히도.(으하하) 처음 <범죄의 여왕>을 만들 때 어쨌든 스릴러라는 장르를 선택했으니 기본적으로 수사원과 조사원, 이렇게 두 캐릭터를 설정했다. 그럼 나머지는 셋트로 맞춰진다. 예를 들면 미경은 셜록, 개태는 왓슨, 진숙은 목격자, 덕구는 정보원! 특히 덕구 캐릭터는 <브릭>이라는 영화에서 참고했다. 거기에 보면 정보원 역할을 하는 배우가 항상 도서관 한 구석에서 큐브를 맞추고 있다. 누가 와서 뭘 물어보면 “어디어디에 가서 누굴 만나봐” 라고 말한다.(웃음) 진숙은 시퀀스 안에서 볼 때 목격자이기도 하지만 살인의 대상이 됐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언덕녀를 상상해가며 만들었다. 

‘덕구’는 사실 정보원이라기엔 좀 바보 같더라.(웃음) 
덕구 캐릭터가 좀 모자라다.(웃음)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이건 진숙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그 인물들이 하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좀 흐트러트릴 필요가 있었다. 오로지 미경의 판단에 맡기기 위해서다. 덕구나 진숙이 하는 얘기는 가만 들어보면 그렇게 신뢰가 가는 얘기도 아니고 반대로 그렇게 틀린 얘기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믿으면 믿는 거고, 안 믿어도 그만인 얘기들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결국 미경이 그 말을 믿었다는 거고, 모두 사실이었다. 결론적으로 아무도 미경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럼 덕구와 진숙은 어땠을까. 모자라보이는 자신들의 얘기를 믿어줬을 땐 미경에게 더 잘해주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 그림을 생각했다. 




청춘의 무기력함,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것. 광화문시네마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강점이 아닌가 싶다. 그 무기력해보이던 청춘이 모여 결국 무언가 하나를 이루어내는 카타르시스. 결말이 조-금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지만 즐거웠던 것은 바로 그 무기력함이 모여 큰 거사를 치러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기력한게 정말 무기력하기만 하다가 끝나면 진짜 무기력하잖아.  


한편 영화를 보고 나면 개태의 매력에 헤어나올 수 없는데, 개태의 매력은.. 소같은 눈...ㅇ_ㅇ? 무심한듯 시크하게 미경의 친절한 왓슨씨가 되어준 그. 왜, 항상 조폭 시다바리 중에는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애들 한 명씩은 꼭 있지 않나. 알고보면 따뜻한 개태는 영화의 최고 조연이 아닌가 싶다. 







광화문 시네마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일종의 창작 연대인가. 
대외적으론 그런 것 같다.(웃음) 근데 내부적으론 조기축구회 같은 분위기다. 때 되면 만나서 놀고 헤어지고 하는. 총 7명인데 3명만 만나서 놀고, 어떤 때는 두 명만 만나고. 이런 걸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집단인 것 같은데.(웃음) 

당신은 좀 나중에 들어가게 된 걸로 안다. <족구왕> 연출을 도운 게 계기였나. 
그런 개념이라기 보단, 다 같이 노는 데 껴 있다가 그렇게 된 거다.(웃음) 물론 전고은 감독이 다리를 이어 주긴 했다. 내가 좋아하는 오빠들이야! 이러면서.(웃음) 원래 광화문 시네마 사람들이 다 나랑 동기이긴 한데, 안 친했다. 그러다가 와이프랑 같이 살게 되니까 집이랑 사무실도 바로 옆이 되고. 일주일에 세 네 번씩 모여서 술 마시고 놀게 된 거다. 사실 광화문 시네마에서는 우리 둘이 부부라고 별로 안 좋아 한다.(웃음) 감독 개인으로 볼 때가 서로 제일 편하고 좋으니까. 

은근슬쩍 멤버가 됐다고 봐야겠다. 
그렇다. 그렇게 거국적이지 않다. 그냥 잘 노는 형들 있다 그래서 따라가보니 거기가 영화 팀이고 그런 거다.(으하하) 



미세먼지 가득한 토요일, 덕수궁.

날씨가 워낙 좋아서(좋을 것 같아서) 바쁜 와중이지만 시간을 쪼개 잠시 나들이를 왔다.

미세먼지와 태극기집회라는 두 변수를 고려하지 못한 것은 실수...

그래도 덕수궁은 아름다웠다!





▲ 덕수궁 돌담길






▲ 동심 파괴 플랜카드, 하지만 너무나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아이들





▲ 정동극장 앞. 할아버지는 쇠를 꼬아 미니 공예품을 만들고 계셨다.





▲ 뜨거울때 꽃이 핀다.





▲ 덕수궁 석조전. 미리 알았다면 관람 신청을 했을텐데. 창으로 살짝 훔쳐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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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 소식을 전해듣고서야 예매를 하게된 문라이트.

예상대로 상영관은 많지 않았고 조조영화를 보기 위해 메가박스 이수점을 찾았다.


상영관이 적어 수익이 안 나는 걸까, 수익이 안 나 상영관이 적은 걸까.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아닌, 꼬불꼬불 숨어있는 맛집에 시간맞춰가는 기분이 다양성 영화의 묘미라면 또 묘미겠지만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더 많이 맛보길 바라는 욕심이 남는다. 


문라이트는 한 흑인 소년의 성장기를 3부작으로 그리고 있다. 천천히 아무것도 아닌듯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소년이 청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담담하지만 따뜻하게 그려낸다. 






I. Little 



당신의 영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리틀은 작은 체구로 아이들에게 놀림거리를 받는 꼬마아이였다. 아이들을 피해 숨어든 곳은 공교롭게도 마약상들의 소굴. 겁에 질린 리틀을 발견한 후안은 리틀에게 어떤 연민을 느꼈는지, 입을 꾹 다문 리틀에게 밥을 주고 잠자리도 제공해준다. 리틀의 엄마가 마약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안은 리틀의 옆에서 묵묵하게, 든든한 멘토가 되어준다. 후안은 리틀에게서 아마 자신의 과거를 보았던 것 같다. 



넌 지금 세상 한가운데 있는거야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마.


  

후안은 리틀에게 수영을 가르쳐준다. 흑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난한 과정을 경험한 그였기에, 비록 누군가에겐 한낱 마약상으로 보인다할지라도 리틀에겐 최고의 멘토이지 않았을까. 파도처럼 요동치는 세상 한가운데서 나의 중심을 잡고 숨쉬며 살아가는 것. 끝까지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후안이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II. Chiron



세상이 당신을 밀어낼 때, 당신 안의 강인함을 찾으세요




작은 꼬마 리틀은 자라서 샤이론이 된다. 엄마의 마약중독은 점점 심해져가고, 여전히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샤이론에게 더이상 든든한 멘토였던 후안은 없다. 그의 아내 테레사만이 남아 샤이론을 보살펴준다. 



고개 숙이지마, 규칙 알잖아. 여기엔 사랑과 자부심밖에 없어.



샤이론은 여전히 수줍고 말이 없지만 이젠 누군가에게서 자신을 지켜내려 노력한다. 조금씩 강인해지는 샤이론. 그리고 케빈이라는 친구도 생겼다. 케빈은 딱 그 나이대, 장난끼 많은 아이. 샤이론에게 어떤 동질감을 느껴 다가왔는지는 모르지만, 그 나이때야 말로 이유없이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아닌가.






샤이론에게 케빈이 좀 더 특별했던 건, 케빈을 통해 샤이론이 보다 자신을 더 잘 알게되어서였다. 성에 관심이 많았던 케빈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게 된 샤이론, 그리고 그런 샤이론의 옆에 있어준 케빈.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머리가 아니라 가슴, 가슴이 아니라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량 학생들로 인해 발생한 폭력 사건에 휘말린 둘은 멀어지게 되고, 2부는 샤이론이 불량 학생의 머리를 의자로 내려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III. Black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진실된 자신은 언제나 당신 안에 있습니다




어릴 적 리틀이 만났던 후안처럼 건장한 청년이 된 샤이론. 어릴 적 왜소한 체격과 흔들리는 눈빛 대신, 근육질의 몸과 무심한 눈빛의 샤이론. 소년원에서 만난 사람을 통해 마약상을 되어 삐까뻔쩍한 차를 타고 다니고, 어릴 적 자신과 같은 어린 친구를 챙겨주는 입장이 되었지만 그 눈에는 왠지 모를 슬픔이 서려있다. 샤이론의 엄마는 결국 병원에 입원해 지난 날을 뉘우치고 있었다. 하지만 샤이론에겐 그것이 그저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우연히 연락이 닿은 케빈을 찾아간 샤이론. 케빈은 한 음식점에서 식당일을 하고 있다. 약간의 어색함, 하지만 점점 누그러지는 그들의 공백. 그들은 그렇게 다시 재회한다. 



who is you, man? who is you, chiron?


샤이론이 위태로워보였던 걸까, 케빈은 샤이론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건네고, 샤이론은 그제야 보이지 않는 무장을 내려놓고 온전한 샤이론으로 케빈 앞에 선다. 누군가의 앞에서 진짜 내가 되는 것, 그것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샤이론의 삶은 힘들었지만, 항상 누군가가 옆에 있었다. 후안, 테레사, 케빈, 그리고 어머니까지. 혼자인 줄 알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나로 바로서기까지, 나를 지탱해준 그 누군가들이 생각나는 영화. 무심한듯 흘러가는 성장 이야기 속에 느껴지는 희미한 따스함이 아름다웠던 영화였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나홀로 후쿠오카, 유후인 1일차

(긴린코 호수, 쇼와박물관, 컨트리로드 유스호스텔)








긴린코 호숫가에 자리한 호텔

동화속에 나오는 미지의 성같았다





긴린코 호수를 구경하는 사람들





호수 뒤편에 있는 나무에 둘러진 종이들.

아마 소원을 적은 종이가 아닐까, 일본어를 몰라서 아쉬웠음.







새벽 물안개가 아름다운 긴린코 호수


지만, 정작 나는 흐릿한 오후에 방문해서 참 아쉬웠던 곳. 유후인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수많은 기념품 거리를 걸어올라오다보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긴린은 물가에 비친 고기비늘의 색이 황금색이라는 뜻이라고. 슬쩍 보면 그저그런 호수일 수도 있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유후인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기념품 거리에서 솟아올랐던 나의 탐욕을 잠시 내려놓고 가만히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더불어 혼자여서 느껴지는 고독감 역시 두 배로 되는 곳이었지...


호수 한 편에는 산을 등지고 있는, 말그대로 배산임수의 호텔이 하나 있다. 검색해보니 라 메종드 다비드라고. 비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저렴한걸? 다다미룸으로 일박에 15~20만원이면 묵을 수 있는 것 같다. 다음에 또 유후인에 온다면 이곳에 도전해보리라. 난 절대 새벽에 엉금엉금 기어나와 물안개를 보러 올 체력도 정신도 없을테니...










겁 없는 고양이?





는 훼이크.





쇼와박물관 입구를 지키는 든든한 로봇일세





90년대 일본 교실의 풍경

우리네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본 가정집의 거실

화로가 참 귀여웠다





거실 한켠에서 발견한,

망원경 안에 색종이 조각들이 들어있어 

흔들면 신기한 데칼코마니 무늬들을 만들어내는 추억의 장난감





1인 미용실.

바리깡으로 시원하게 밀어야 할 것 같은 기분





사케 한잔...?







90년대 일본이 궁금하다면, 쇼와박물관


긴린코 호수에서 고독감에 흠뻑 젖어 찬바람을 맞으며 내려오던 중, 아까는 발견하지 못했던 장소를 발견했다. 이름하야 '쇼와박물관'. 버블경제 시대에 부유했던 일본의 모습을 세트로 구현해놓은 박물관으로, 친절한 한국어 설명 간판이 있어 왠지 더 궁금증이 생겼다. 심지어 입장할때 skt로 할인까지 받았어... 유명한 곳인가 싶었지만 세트 안에 들어가니 나 혼자였다는. 물론 마감시간이 좀 임박하긴 했었지만.


가정집, 상점, 술집, 이발원, 동네 문방구 등 다양한 일본 사회상이 재현되어있다. 녹슨 소품 하나하나가 그 시대의 향기를 짙게 품고있었다. 물론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 공간 자체만으로도 시간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어렸을 적 할머니가 일본에 계셔서인지 우리집엔 일본식 가전제품이 많았다. 전기 변압기가 필요했던 110v 다리미부터 밥솥과 토스트기까지. 그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솟아올랐다. 1년에 한두번 오시던 할머니가 사오셨던 일본 까까들이 참 기다려졌었는데. 괜히 추억에 젖어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유후인 관광을 하다가 시간이 좀 남는다면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재밌는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 전반적으로 실내가 어둡기도 하고, 카메라 배터리도 간당간당하여 사진을 제대로 못찍은건 좀 아쉬웠다. 










터벅터벅 내려오다보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유후인





유후인 컨트리로드 숙소





역시 여행 계획은 전날 세워야 제맛



혼자 왔다면 컨트리로드 숙소로


유후인에는 대부분의, 아니 90%숙소가 료칸이다. 한 사람을 받아주는 료칸은 극히 드물다. 나 역시 급하게 잡은 여행 일정이었던지라 예약에 실패. 흑흑. 그래도 다행이 이곳, 유후인컨트리로드 유스호스텔은 자리가 남아있어 예약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묵은 곳은 여자 도미토리방. 


장점;

- 숙소가 깨끗하고 인테리어가 좋다.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침대도 아늑하고, 개인 소장품을 보관할 수 있는 자물쇠 달린 서랍도 있다. 도미토리 방 내부에는 별도의 다다미방이 있어 안에서 간식을 먹거나 일기를 쓰기에 좋았다. 만약 친구들 4명이서 와서 이 방 하나에 묵는다면 정말 좋을듯. 

- 지하에 온천이 있다. 료칸엔 당연히 온천이 딸려있지만 일반 게스트하우스에서까지 기대하긴 어려운 것이 사실. 후기를 보니 물이 좋다고 하던데, 진짜 정말 좋았다. 그래서 저녁과 아침으로 온천을 두 번이나 해버렸음. 물론 7~8명이 들어가면 꽉찰 만한 크기이긴 했지만, 아늑하니 좋았다. 단, 온천에서 야외 뷰를 볼 수는 없다. 여긴 뷰가 없그든요....

- 주인 내외분들이 떠날 때 노래를 불러주신다. 형식적이지만 괜시리 정이 느껴졌다.

- 저렴하다. 일박에 2만원~3만원 사이였던 듯.


단점;

- 멀다. 유후인 산 속 꼭대기에 있어 기차역에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 올라가야한다. 캐리어가 없다면 유후인 관광을 끝내고 설렁설렁 걸어올 수도 있겠지만, 캐리어가 있다면 무조건 픽업 차를 타고 와야한다. 다행히 픽업 서비스는 있다. 나는 유후인 역 앞에서 6시에 탑승. 봉고차에 유후인 컨트리로드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여있다.

- 밤 산책이 거의 불가능하다. 보통 료칸에 들어와 저녁을 먹고 휴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일텐데, 여긴 바깥으로 나가서 뭔 경치를 보기가 힘들다. 왜냐면 첩첩 산중에 있어 무섭고 어둡고 보이는게 없그든요... 하지만 1층에 식당으로 마련된 공간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내려가서 책을 읽거나 자유활동을 하기에는 좋았다. 


게스트하우스 자체만 놓고 보면 가장 좋았던 곳. 하루밖에 묵을 수 없다는게 너무 아쉬웠더랬다.

딱 요날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그랬는데. 그 다음 날 나에게 어마무시한 시련이 닥칠 줄은 까맣게 몰랐던 것이었다....



지금 우리는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이렇게 달려가는게 정말 맞는 걸까?


이런 고민조차 사치인 우리들에게 잠시 숨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볼 기회를 주는 영화, 싱글라이더.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 삶엔 준비보단 시작이 필요한 게 아닐까?


모두들 쳇바퀴처럼 도는 인생을 살아간다.

내 꿈을 위해, 내 사람들을 위해, 내 미래를 위해.

더 잘 살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왜 그렇게나 많은건지 24시간은 턱없이 모자라기만 하다.


종종 수단과 목적은 전도되어버리고

핑크빛 미래를 상상하며 흑백 현실을 살아가는 스스로를 자위한다.



좀 있다가, 나중에, 이것만 끝내면, 언젠간...



바쁜 일상에 치여 누군가에게 사랑한다 한 마디 전할 여유조차 없고,

진짜 하고싶은 것은 어느순간 희미해져 누군가를 제치고 이기는 것에만 목매여버리고,

남의 마음을 챙기는데 온 신경을 쏟아 결국 내 마음은 황폐해지는, 그런 일들.


그래서 결국엔 어떻게 살고싶은건데?라고 누군가 물으면 잠시 멍해지며 할 말을 잊어버리곤 한다.

사실은 모두다 무의식중에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리 멀리 있지 않고, 그리 어렵지 않으며,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사실은 그 핑크빛 미래라는 것이 어쩌면 단지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준비'하는 데만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준비'해야한다는 수많은 목소리에 그저 몸을 맡겨버리고 나는 잘하고 있다며 안주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 수많은 '준비'의 시간을 조금 덜어내어 지금 바로 '시작'하는데 쓴다면,

작고 미약한, 보잘것 없어보이는 '시작'이라 할지라도 그로 인해 우리 삶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이주영 감독님이 가장 좋아하신다는 장면.

홍콩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애하고 와이프 여기에다 보내놓고, 2년 동안 한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어요.


잘나가는 증권회사의 점장이었지만, 부실채권으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재훈. 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러기 아빠들의 표상이다. 불 꺼진 식탁아래 앉아 포장해온 초밥을 우겨넣고, 아내에게 말 못한 채 묵묵히 손등에 주소를 적어내는 그의 모습은 가장으로서의 무게와 회한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는 단지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고 싶었을텐데.


자신이 등떠밀어 보낸 아내와 아이였음에도, 그들의 행복해보이는 한 때에 쉬이 발을 들이지 못하는 재훈. 그는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을까, 더이상 이 생활을 지원해줄 수 없어 슬퍼했을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이질감에 혼란스러웠을까. 행복해 보이는 아내 옆의 또 다른 남자를 보면서도 그가 쉽게 화를 낼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빈자리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채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말한다. 정말 중요한 것을 이제야 알았다는 후회와 회한이 짙게 묻어나왔다. 







연락이 되지 않는 남편때문에 복잡다단한 심경이지만,

이민을 위해 꿋꿋하게 국립악단 시험을 보러가는 수진.



제가 제 인생의 주체가 되는 것을 피해왔어요.


수진은 재훈과 결혼한 뒤 음악을 포기하고 육아와 내조에 매진해왔다.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재훈에게 등떠밀려 아들과 단 둘이 호주에 왔다. 한국과는 다른 생활을 하면서 수진은 잊고 살았던 자기 자신의 꿈을 다시금 찾게 되고, 남편 몰래 이민을 준비한다. 물론 자신이 국적을 따 준비해놓으면 남편도 같이 올 수 있을 것이라 소망하며.


수진이 호주에서 계속 살고싶다고, 같이 와서 살자고 얘기했다면 재훈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수진이 재훈에게 미리 얘기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지만 그녀가 용기내어 입을 뗐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나였어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거다. 확신을 얻고 확신을 주기 위한 무엇으로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외적인 준비에 의존하곤 하니까. 수진도 늘 되새겼을 것이다. "합격하면, 합격만 하면..." 하고 말이다.


남편의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공항으로 가는 길, 수진은 화장실에서 이내 꺼이꺼이 울어버리고 만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돈을 벌러 온 진아.

세상은 순진한 사람에게 참 가혹하다.




새벽 5시에 버스를 타보면요,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말 그거 진짜 개소리거든요.


호주에서 열심히 돈을 벌었지만, 환전 사기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은 진아. (연기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론 가장 감정이입됬던 캐릭터. 그녀가 품었을 꿈, 그녀가 흘렸을 땀방울, 그녀가 버텨낸 시간들이 참 아쉽고도 아쉬워서. 생생하고 파릇파릇한 청춘의 이미지로 우리네 삶의 허무함과 헛헛함을 배로 키워주는 캐릭터다. 하고싶은 것도 갖고싶은 것도 많은 그런 나이, 진아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었을까.






어느 산뜻한 날의 시원한 바람처럼 그렇게


우리가 아무도 모르게 여기 혼자 왔던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지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결국 모든 것을 알게 된 재훈과 지나. 오히려 그들이 훨씬 더 편안해보였던 것은 왜일까. 

핑크빛 미래로 가는 방법인줄 알았지만 실은 그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삶의 굴레를 이제서야 내려놓을 수 있어서일까. 

그렇게 조용히, 그들은 가벼운 마음을 안은채 길의 끝으로 나아간다. 


누군가는 지루했다고 하지만 나에겐 감정 하나하나를 곱씹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마음 속 한 켠에 생각의 라이트를 켜주는 그런 영화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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