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 소식을 전해듣고서야 예매를 하게된 문라이트.

예상대로 상영관은 많지 않았고 조조영화를 보기 위해 메가박스 이수점을 찾았다.


상영관이 적어 수익이 안 나는 걸까, 수익이 안 나 상영관이 적은 걸까.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아닌, 꼬불꼬불 숨어있는 맛집에 시간맞춰가는 기분이 다양성 영화의 묘미라면 또 묘미겠지만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더 많이 맛보길 바라는 욕심이 남는다. 


문라이트는 한 흑인 소년의 성장기를 3부작으로 그리고 있다. 천천히 아무것도 아닌듯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소년이 청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담담하지만 따뜻하게 그려낸다. 






I. Little 



당신의 영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리틀은 작은 체구로 아이들에게 놀림거리를 받는 꼬마아이였다. 아이들을 피해 숨어든 곳은 공교롭게도 마약상들의 소굴. 겁에 질린 리틀을 발견한 후안은 리틀에게 어떤 연민을 느꼈는지, 입을 꾹 다문 리틀에게 밥을 주고 잠자리도 제공해준다. 리틀의 엄마가 마약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안은 리틀의 옆에서 묵묵하게, 든든한 멘토가 되어준다. 후안은 리틀에게서 아마 자신의 과거를 보았던 것 같다. 



넌 지금 세상 한가운데 있는거야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마.


  

후안은 리틀에게 수영을 가르쳐준다. 흑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난한 과정을 경험한 그였기에, 비록 누군가에겐 한낱 마약상으로 보인다할지라도 리틀에겐 최고의 멘토이지 않았을까. 파도처럼 요동치는 세상 한가운데서 나의 중심을 잡고 숨쉬며 살아가는 것. 끝까지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후안이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II. Chiron



세상이 당신을 밀어낼 때, 당신 안의 강인함을 찾으세요




작은 꼬마 리틀은 자라서 샤이론이 된다. 엄마의 마약중독은 점점 심해져가고, 여전히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샤이론에게 더이상 든든한 멘토였던 후안은 없다. 그의 아내 테레사만이 남아 샤이론을 보살펴준다. 



고개 숙이지마, 규칙 알잖아. 여기엔 사랑과 자부심밖에 없어.



샤이론은 여전히 수줍고 말이 없지만 이젠 누군가에게서 자신을 지켜내려 노력한다. 조금씩 강인해지는 샤이론. 그리고 케빈이라는 친구도 생겼다. 케빈은 딱 그 나이대, 장난끼 많은 아이. 샤이론에게 어떤 동질감을 느껴 다가왔는지는 모르지만, 그 나이때야 말로 이유없이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아닌가.






샤이론에게 케빈이 좀 더 특별했던 건, 케빈을 통해 샤이론이 보다 자신을 더 잘 알게되어서였다. 성에 관심이 많았던 케빈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게 된 샤이론, 그리고 그런 샤이론의 옆에 있어준 케빈.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머리가 아니라 가슴, 가슴이 아니라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량 학생들로 인해 발생한 폭력 사건에 휘말린 둘은 멀어지게 되고, 2부는 샤이론이 불량 학생의 머리를 의자로 내려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III. Black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진실된 자신은 언제나 당신 안에 있습니다




어릴 적 리틀이 만났던 후안처럼 건장한 청년이 된 샤이론. 어릴 적 왜소한 체격과 흔들리는 눈빛 대신, 근육질의 몸과 무심한 눈빛의 샤이론. 소년원에서 만난 사람을 통해 마약상을 되어 삐까뻔쩍한 차를 타고 다니고, 어릴 적 자신과 같은 어린 친구를 챙겨주는 입장이 되었지만 그 눈에는 왠지 모를 슬픔이 서려있다. 샤이론의 엄마는 결국 병원에 입원해 지난 날을 뉘우치고 있었다. 하지만 샤이론에겐 그것이 그저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우연히 연락이 닿은 케빈을 찾아간 샤이론. 케빈은 한 음식점에서 식당일을 하고 있다. 약간의 어색함, 하지만 점점 누그러지는 그들의 공백. 그들은 그렇게 다시 재회한다. 



who is you, man? who is you, chiron?


샤이론이 위태로워보였던 걸까, 케빈은 샤이론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건네고, 샤이론은 그제야 보이지 않는 무장을 내려놓고 온전한 샤이론으로 케빈 앞에 선다. 누군가의 앞에서 진짜 내가 되는 것, 그것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샤이론의 삶은 힘들었지만, 항상 누군가가 옆에 있었다. 후안, 테레사, 케빈, 그리고 어머니까지. 혼자인 줄 알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나로 바로서기까지, 나를 지탱해준 그 누군가들이 생각나는 영화. 무심한듯 흘러가는 성장 이야기 속에 느껴지는 희미한 따스함이 아름다웠던 영화였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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